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업체 일부를 돕기 위해 무언가를 검토하고 있다"며 자동차 관세 일시 면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에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관세 전쟁'에서 한국 자동차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크던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발언이 실현될 경우 현대차·기아 등 한국 완성차 기업들의 미국 시장 수출에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열렸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 관세 정책… 이번엔 '면제' 카드
미국 주식시장은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완화 발언에 힘입어 3대 지수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미 정부가 스마트폰·컴퓨터·반도체 등을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데 이어 자동차 관련 관세도 일시적으로 면제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GM은 3.5%, 포드는 4.1% 급등했다.
이는 현지 투자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면제 검토 발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발언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미국 증시는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 주가에도 단기적으로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3일부터 유럽·일본·한국 등으로부터의 완성차 수입에 기존 2.5%에서 25%로 인상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전 세계 자동차 공급망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이어 자동차에 대해서도 관세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당초 강경했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기아 미국 수출 영향은? 숨통은 트이나 안심은 금물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 내 앨라배마(현대차)와 조지아(기아) 공장에서 연간 약 11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제네시스와 일부 전기차 모델은 여전히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관세 영향권에 있다. 특히 제네시스 브랜드의 GV80, G80, G90 등 고급 세단과 SUV는 미국 현지 생산 없이 전량 수출하고 있어 관세 인상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상황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은 연간 약 30만 대 수준으로, 25% 관세 부과 시 연간 약 1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일시적이라도 관세가 면제된다면 이러한 부담이 일정 기간 완화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공장 증설을 통해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조지아주에 약 7조 5천억 원을 투자해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2025년 하반기부터 가동 예정이다. 또한 앨라배마 공장에서도 전기차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는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이 어느 정도까지 현실화될지, 또 어떤 자동차 업체가 혜택을 받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자동차 업체 일부를 돕기 위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업체가 혜택을 받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시적'이라는 단서가 붙은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 있다.
韓 자동차 부품업체들, 이중고 속 희망의 불씨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트럼프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만도, 한온시스템 등 주요 부품 업체들은 미국 내 완성차 공장에 부품을 공급하거나 직접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간접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부진과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 강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면제 검토는 이런 상황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다만 부품업체 관계자들은 "일시적인 면제보다는 장기적인 관세 정책 방향이 명확해져야 경영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한국 자동차 부품 기업들의 총 매출은 연간 약 100억 달러(약 13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들 기업의 생존은 현대차·기아의 미국 공장 가동률과 직결되어 있어, 완성차 업체의 관세 부담 완화는 부품 업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의 진실게임...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 속 한국 자동차산업 대응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보여주는 극심한 변동성은 글로벌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이 언급했듯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제약이 되는 장·단기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도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장기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조지아 전기차 공장 설립 등을 통해 이 전략을 추진 중이다. 둘째,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모델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관세 부담이 있더라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프리미엄 모델과 전기차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다. 셋째, 미국 외 지역 시장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다. 동남아, 중동, 남미 등 신흥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통해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이다.
국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관세 면제 발언은 일시적 호재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단기적 관세 정책 변화에 휘둘리기보다는 중장기적인 미국 현지화 전략과 글로벌 생산기지 다변화를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론: 관세 불확실성 속 중장기 전략 필요한 시점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일시 면제 검토 발언은 단기적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희소식이다. 특히 현재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현대차·기아 등 한국 완성차 제조사들에게는 미국 시장 경쟁력을 일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보여온 급격한 변동성을 고려할 때, 이번 발언만으로 안심하기는 이르다. '일부 업체'를 대상으로 한 '일시적' 면제라는 단서가 붙은 만큼, 그 범위와 기간에 따라 실질적 혜택은 제한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의 큰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자동차 산업은 계속해서 관세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국 현지 생산 확대, 전기차 전환 가속화, 시장 다변화 등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관세라는 외부 변수에만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기술 혁신과 경영 효율화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내구성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트럼프가 언급한 "약간의 유연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잠시 멈췄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돌아간다"는 발언은 관세 완화가 일시적인 전략적 후퇴일 뿐, 보호무역 기조는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국 시장 전략을 재점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