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이 4월 15일 발효된 후 6개월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 산업계와 정부는 이에 대한 구조적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단순한 외교적 해결책을 넘어 국가 차원의 기술 자립 전략과 연구보안 체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민감국가 지정 장기화가 한국 산업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과 정책적 대응 방안을 살펴보겠습니다.
6개월 이상 장기화 현실화
미국 에너지부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이 장기화되는 배경에는 단순한 절차적 문제를 넘어선 전략적 고려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첨단 기술의 유출과 보안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으며, 한국이 중국과 맺고 있는 다양한 기술 협력 관계에 우려를 표명해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연구보안 체계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 없이는 민감국가 지정 해제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민감국가 지정이 6개월 이상 장기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기술적·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합니다. 특히 원자력, 반도체, 우주, 국방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미국 연구기관과의 기술 교류가 제한되면서 상당한 영향이 예상됩니다. 한국은 그동안 많은 첨단 분야에서 미국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발전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협력 채널의 제한은 단기적으로 연구 개발 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도전이 오히려 한국의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협력 채널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핵심기술 독자 개발 필요성
민감국가 지정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국가 연구개발 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첫째, 연구보안 체계의 전면적 개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통령령에 국제 공동 연구 시 기술 유출 방지 및 보안 조치 강화를 위한 규정을 추가하고, 국가 차원의 통합된 연구보안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의 연구 신뢰도를 높여 향후 국제 협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둘째, 핵심 전략 기술에 대한 자립도 제고 정책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우주, 국방 등 핵심 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대규모 R&D 투자와 함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기존의 '소부장 2.0 전략'을 넘어 국가 차원의 기술 자주권 확보를 위한 포괄적인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셋째, 국제 기술 협력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외에도 유럽연합, 영국, 일본, 호주, 인도 등 다양한 국가들과의 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형 기술 동맹' 구축으로 발전시켜, 특정 국가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보다 탄력적인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정부 R&D 정책 변화
원자력 및 에너지 산업은 민감국가 지정 장기화에 대응하여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독자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자체 SMR 기술 개발에 더욱 집중하고,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외 유럽, 일본 등과의 대체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원전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어 독자적인 기술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입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수출 10기' 프로젝트는 중동, 동유럽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여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 및 첨단 기술 산업 역시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독자적 기술 로드맵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인재 양성과 연구 인프라 구축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를 위해 원익IPS, 솔브레인, 동진쎄미켐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위산업 및 우주 산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분야이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한화시스템, 한국항공우주, LIG넥스원 등은 독자적인 방산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유럽, 이스라엘 등 대체 협력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민감국가 지정 장기화는 한국 산업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 역량 강화, 글로벌 협력 파트너 다변화, 연구보안 체계 고도화 등을 통해 오히려 한국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외교적 문제가 아닌 국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전환점으로 활용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